요즘 연말연시 모임이 많다. 그래서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건배사. 술자리가 시작되면 으레 ‘건배사 하나 해보지’라는 제의를 받기 때문이다. 건배사는 스피치 중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력한 핵폭탄 스피치이다. 몇 마디로 좌중을 휘어잡기도 하고 상황을 일대 반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부적절하거나 썰렁한 건배사는 30년 공든 탑을 단 30초 만에 망가뜨릴 수 있다. 얼마 전 ‘오바마’ 때문에 공직에서 중도하차한 K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 그는 짧은 몇 마디 건배사로 ‘성희롱’ 논란에 휘말려 사퇴하고 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K씨 개인에 국한 된 게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성행위’도 있다. 그 뜻은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이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든다.

이경숙 전 숙대 총장이 만든 건배사 ‘진달래’도 원래 뜻은 ‘진하고 달콤한 미래를 위하여’였으나 지금은 ‘진짜 달라면 줄래’라는 뜻의 저급한 건배사로 변질됐다.

분위기를 띄운다는 이유로 유치하거나 선정적인 말들을 외치는 게 아예 건배사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건배사는 스피커의 품격까지 깎아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오바마’처럼 대형 사고를 치기에 딱이다.

아트스피치연구원 김미경 원장이 새로운 건배사 문화를 제안한다. 최근 ‘스토리 건배사’(21세기북스)를 출간한 김 원장은 천편일률적인 건배사는 이제 그만하고 감동의 스토리를 채워 넣으라고 말한다.

‘스토리 건배사’란 상황과 청중에 걸 맞는 짤막한 이야기를 넣고 키워드를 뽑아 선후창을 만드는 형식이다. 이를 통해 30초 만에 자신의 매력과 리더십을 임팩트 있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특히 자신의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을 담은 ‘브랜드 건배사’를 하나쯤 만들어두면 어떤 상황에서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고 조언한다.

건배사 베스트 5
1.넉넉하게 품자
2.열정을 충전하자
3.새 술은 새 부대에
4.막걸리처럼 익어가자
5. 오늘을 추억으로

상황별 건배사
1. 품격 있는 자리에서 멋진 시 구절을 활용한 예
얼마 전에 읽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올 한해 추락한 것들과 꽃이 핀 모든 것들을 위해서 우리 건배합시다. “사랑이여 건배”

2. 부부 동반으로 하는 송년, 신년 모임에서 아내들을 배려한 건배사
얼마 전에 트윗에서 재밌는 글을 봤습니다. ‘이제 나이가 드니 알겠다. 여자의 모든 변덕은 사랑해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 새해엔 남자들이 철 좀 들길 바라면서, “아내의 바가지는 순정이다.”

3. 소박하면서도 겸손이 돋보이는 건배사
우리가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세 잎 클로버에도 꽃말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바로 ‘행복’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엔 멀리 있는 행운을 찾기보다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볼 수 있는 지혜로운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오늘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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