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의원
지난 2016년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힌 민원인에게 수차례 만남을 요구하는 등 부적절한 문자메시지를 보내 파면 처분된 경찰관 A씨는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소청심사위는 “성희롱 정도, 수위, 피해 경중에 비춰 그 내용이 사회통념상 극히 혐오스러운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며 정직 2월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 

부하 직원들에게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언동을 해 중징계 해임된 법무부 공무원 B씨도 소청심사위에서 징계 수위가 한 단계(강등) 낮아졌다. 소청심사위는 결정문에서 “일부 비하 발언은 피해자들의 미숙한 업무처리로 인해 직속 상관인 소청인이 이를 지적하고 지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업무 중 있을 수도 있는 일’로 치부했다.

또 “적극적인 성적 의도, 욕망의 충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23년 동안 징계 전력 없이 성실하게 근무한 점,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을 감경 사유로 들었다.     

지난해 여직원의 머리‧얼굴을 만지고, 키스를 시도하고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낸 경기도 한 지자체 공무원 C씨는 해임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C씨는 도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 심사를 제기한 끝에 강등으로 감경됐다. 징계 전력이 없으며, 암 투병 중인 배우자가 있다는 이유가 참작됐다.

부하 여직원을 상대로 “사타구니가 가려워 자주 긁는다”고 말하는 등 10개월에 걸쳐 성희롱을 한 대구시 공무원 D씨는 당초 정직 2월에서 소청 심사 후 감봉 3월로 경징계 처분됐다. 대구시 소청심사위는 “소청인의 경박한 언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별다른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결정 요지를 밝혔다.

이은주 의원(정의당, 행정안전위원회)은 최근 5년(2015~2019년)간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로 징계받은 국가공무원 10명 중 4명이 소청을 제기했고 이 중 24.5%는 소청심사를 거친 뒤 징계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8월21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징계받은 지방공무원도 10명 중 3명이 소청을 제기해 34.3%는 감경됐다. 그런데 국가공무원 징계 재심 기구인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와 지방공무원 징계 재심 기구인 각 시‧도 지방소청심사위원회 결정 요지를 들여다보니 불분명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감경된 사례가 많았다. 

이은주 의원이 인사혁신처와 17개 시‧도로부터 각각 받은 2015~2019년 성비위 징계받은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소청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성비위로 징계받은 국가공무원 1049명 중 367명(35%)이, 지방공무원 461명 중 137명(29.7%)이 징계에 불복해 소청 심사를 제기했다. 2015년 39건/20건(국가공무원/지방공무원), 2016년 57건/18건, 2017년 82건/25건, 2018년 94건/37건, 2019년 95건/37건이다.

이들이 저지른 성비위 양상 또한 천태만상이었다.

연인관계로 지내던 피해자를 때려 다치게 한 공무원은 물론 채팅앱을 통해 성매매를 한 공무원, 술을 마시고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여성들을 추행한 공무원, 불특정 다수 여성 치마 속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공무원, 만취한 자원봉사자를 모텔로 데려가 준강간한 공무원, 소속 여성공무원에게 ‘주모’라고 부르며 팁을 주는 등 성희롱을 한 공무원, 같은 조에 근무하던 피해자 사진을 도용해 피해자가 자신의 팔을 껴안고 있는 그림을 만들어 유포한 공무원까지 낯뜨거운 비위 사례가 차고 넘친다.

한데 성비위 국가공무원 90명(24.5%), 지방공무원 47명(34.3%)은 소청 심사를 통해 기존보다 줄어든 징계를 받거나 징계처분이 취소됐다. 

인사혁신서 소청심사위와 각 시·도 지방소청심사위는 “소청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거나 “징계 전력이 없다”, “피해자와 평소 친분이 있었다”, “피해자도 일부 원인 제공을 했다”, “소청인에게 성적 의도가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과거 관례적이었던 성적 언행” 등 납득 하기 어려운 이유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  

실제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는 출장 중 피해자를 성희롱을 해 견책 처분을 받은 문체부 공무원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 문자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는 등 진정성 있는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불문경고로 수위를 낮췄다.

충청남도 소청심사위도 편의점 계산대에서 피해자의 엉덩이를 툭툭 치듯이 만져 강제추행한 혐의로 견책 처분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 “비위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고, 우발적으로 이뤄졌다”며 불문경고에 부쳤다.

전라북도 소청심사위는 가요주점에서 주점사장과 술을 마시다 추행한 혐의로 감봉 3월 처분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 “피해자와 평소 친분이 있었고, 피해자에게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감봉2월로 감경했다.

그런가 하면 여성공무원에게 ‘주모’라고 부르며 팁을 주는 행위로 정직3월에 처해진 공무원에게는 “비위 정도에 비해 징계가 과도하다”며 감봉3월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 

소청을 통한 징계처분 감경 기준이 자의적이거나 불분명하고, 피해자 입장이 아닌 가해자 입장에서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셈이다.

이은주 의원은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가리지 않고 성비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애초부터 낮은 솜방망이 처벌에, 소청심사위원회에서조차 성범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공무원들의 성비위를 선처해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라며 “전형적인 제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했다.

국가공무원이 비위사건에 연루된 경우 중앙징계위원회(고위공무원, 5급 이상)나 보통징계위원회(6급 이하)에서 징계처분을 받는다. 처분사유설명서를 받은 국가공무원은 30일 내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할 수 있다.

지방공무원의 경우 시도 인사위원회에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처분사유설명서 수령 후 30일 내 시도 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접수한다. 

부당한 징계에 따른 불이익을 구제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소청심사제도가 비위 공무원의 구제 창구로 변질됐다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는 성비위에 한해서만이라도 여성전문가들이 참여한 중앙차원의 특별기구를 만들어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의 소청을 일괄 심사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 의원은 “성비위의 경우 인사혁신처 산하에 여성전문가들이 참여한 ‘성비위특별소청심사위원회’를 설치해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소청을 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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