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청장 신열우)은 1964년 주한 미군 소방관으로 대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던 페이 쉘라(Fay Shalla, 2020년 작고, 남)씨의 당시 근무 사진 10장을 입수해 11월17일 공개했다.

소방청 조선호 대변인은 “페이 쉘라씨의 딸인 크리스티 쉘라(Kristi Shalla, 여, 45세)가 보내준 사진이라고 밝히고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사연에는 올해 초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티 쉘라씨는 스마트시티 건설과 관련된 컨설턴트로 한국의 기관과도 일을 함께하는 경우가 있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으며 현재 워싱턴DC에 거주하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인 페이 쉘라씨는 네브래스카주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다가 미 육군에 입대한 다음 1964년 대구 미군기지에 배치돼 소방관으로 일했으며 1965년 네브래스카로 돌아가 다시 소방관으로 일을 했다.

크리스티 쉘라씨는 “자신의 선친을 모험을 좋아하는 정직한 분이셨고 독서광이자 평생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은 부지런한 분이었다”며 “제대군인원호(GI Bill) 사업으로 군 제대 후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을 전공하고 1971년에 학위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대구에서 한국인 동료들과 현장에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던 경험을 비롯해 2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늘 그리워했다”며 “한국 어린이들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가족들에게 자주 들려줬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티 쉘라 씨에 의하면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앞장섰던 아버지는 1966년 허리가 아파 소방관을 퇴직한 후에 농무부(USDA) 식품영양국에서 푸드 스탬프(Food Stamp) 지급을 승인하는 업무 등을 했다.

2000년까지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퇴직했으며 올해 초 별세했는데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소방관으로 일했던 당시의 사진을 발견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이다.

크리스티 쉘라씨는 “아버지 생전에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한국과 당시에 함께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들을 만나 볼 수 있기를 원해 수소문을 했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선호 대변인은 “당시의 한국인 동료들이 80대 이상의 고령이 됐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생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언론은 물론 미8군 소방대의 협조를 얻어 사진 속의 사람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에 미국의 소방장비와 시스템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주한 미8군의 각 지역 캠프마다 설치된 소방대는 우리나라 현대 소방발전사에서 긴밀한 관련이 있다.

미군정기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시스템으로 운영되던 소방이 서양식 제도와 장비를 도입하는데 전환점이 됐고 한국 소방이 선진화된 소방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가 되기도 했다. 당시 미군 부대 내의 소방대는 화재가 나면 지원 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상호 간 협약을 통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활동을 하고 있다.

1977년 9월 14일에는 서울 남대문시장 대형화재에 출동했던 미8군 용산소방대 이재곤 부대장이 순직하는 사고도 있었다.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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