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가을에 발생한 IMF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때의 외환위기 발생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급격한 위험 증가가 주된 원인이다.  

▲ 김중구 (주)유니타스 부회장
1996년 김영삼 정부는 OECD에 가입하며 대외경제변수에 대한 규제를 완화 하므로 외환 등 각종 경제지표의 변동성이 증가했다. 위험량은 노출액과 변동성이 상호 승수작용을 일으킨다. 그 이전의 경제발전으로 규모가 커진 우리나라 경제에 변동성의 증가는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준비 없이 위험량의 증가를 허용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지를 보여준 사례가 바로 IMF외환위기였다. IMF외환위기 직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위험관리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던 점은 다행스러운 측면이 있다.

위험관리는 비단 경제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했다. 그의 명저 위험사회(Risiko Gesellschaft)는 출간 당시 전세계 사회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산업화, 도시화된 현대사회는 편리한 인프라를 제공하지만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위험에 개인이 노출되는 위험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운영구조는 매우 복잡하여 개인이 그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대처 할 수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문명의 이기는 때로는 흉기가 되어 삶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개인의 안전에 대해 소홀했던 곳에서는 이런 위험은 더욱 크다.

물론 이 위험은 벌써 오래 전부터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적 위험을 이슈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위험선호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위험선호도는 조금 설명이 필요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생명보험에 가입하는가? 하루 벌어 그 날 먹고 살아야 하는 날품팔이 형편인 사람은 생명보험에 가입할 여유나 마인드가 없다. 위험선호도가 낮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락한 현재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생명보험에 가입한다. 전자보다 후자가 위험선호도가 보수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사회는 그 이전에 비해 삶의 수준이 개선되었다. 그 이전에 비해 위험선호도가 민감해 졌기 때문에 위험수준이 같더라도 이를 허용하고 싶지 않는 위험관리 마인드가 생긴 것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아무리 편리한 현대 문명이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위험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른다면 누가 그런 문명을 원하겠는가?

차라리 인과관계가 분명한 불편하지만 원시적인 삶의 형태를 선택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많은 안전사고로 인해 불특정 다수가 스스로의 잘못도 없이 피해를 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멀리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폭파사고 등의 사고가 있었다. 지금도 신문을 지면은 유사한 사건사고로 조용할 날이 없다. 단지 그 피해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슈의 눈 밖에 벗어나 있을 뿐이다.

아이티에 이어 최근에 칠레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희생자가 고통을 받고 있다. 아이티에 비해 칠레의 경우 그 비극이 작았던 것은 지진발생 전의 예방초지와 사고 후의 적절한 대응에 있었다.

한번도 기록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지진의 안전지대로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진에 대한 대비는 어떠한가? 이런 이슈 제기는 전혀 불필요한 것인가? 금융기관의 비상업무계획(BCP: Business Continuity Plan)은 백 만분의 일 이하의 위험발생가능성에 대비하여 작성된다.

AAA 신용등급을 가진 최고의 금융기관은 어떠한 경우라도 기업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이런 대비책을 마련하여 실시간(RT: Real Time)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진발생 가능성이 백 만분의 일 이하로 낮은가? 질문해 볼 시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의 위험선호도가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여서 아무도 그런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극히 낮은 발생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슈를 제기하는 위험선호도 수준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유사한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없다손 치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완벽한 위험관리체계는 절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인터넷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매체를 통하여 위험관리 문화의 개선을 포함하여 아주 효율적인 위험관리 체계를 사회전체적으로 확산해 갈 수 있다.

<세이프투데이(Safe Today)>가 사회전체의 위험관리 개선에서 그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필자도 본 컬럼을 통해 위험관리 문화 확산에 기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세이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