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을 사용한 이래 화재는 피할 수 없는 재난이었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지난 몇 천 년간 화재에 생명과 재산을 잃어가면서 인간은 점차 화재에 잘 대처하게 됐다. 현재의 한국은 어떠할까?

​지난 수십 년간의 화재사고를 통해 우리는 많은 문제점을 알 수 있었고 이를 개선해 왔다. 더 나은 소방기기(불을 빨리 꺼주는 소화장치, 피난 장비, 인간의 부주의를 커버해주는 장치)들이 개발됐다. 

또 국민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화재 시 행동요령을 알고 있고 소방차 출동도 3교대제로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 국민은 화재의 위험을 크게 느끼지 않으며 살고 있다.

​◆ 화재참사 되풀이되고 있다 = 2010년 이래 화재발생 건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화재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규모는 늘어났다(2020년 소방청 통계). 소방시설이 현대화되고 화재에 대한 대비가 잘 됐음에도 불구하고 화재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재는 다양한 원인으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화재는 작은 불씨에서 시작한다. 이를 빨리 감지하고 대피하거나 조기 진압하지 못했을 경우 대형화재로 발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개발된 많은 소방기기들이 조기 진압을 위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다른 각도에서 화재를 바라보자, 왜 불이 났는가가 아니라, 왜 불이 조기에 진압되지 못했는가의 관점에서 문제를 발견해 보자. 또 소방기기가 화재시점에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 기기결함이나 관리자의 잘못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매년 안전점검을 하는데도 이런 비극적인 화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근원적 이유를 따져보자.

​◆ 왜 화재감지시스템이 제 업무를 못하고 있는가? = 모든 기기는 시간이 지나면 낡아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법으로 년 1회 이상 소방점검을 해야 하며, 문제가 생긴 소방기기를 찾아서 교체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미작동하는 기계가 늘 생긴다. 또 심지어 이런 점검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건물도 많다.

​이제 근본적으로 ‘년 1회 이상 점검체계’나 ‘소방기기’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보자. 년 1회 점검으로 과연 안전이 보장될까? 왜 이상이 생기는 기계가 많을까?

지난 9월 화재참사가 일어난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측이 2022년 6월 소방점검 때 지하 1층 주차장 화재 감지기 전선이 끊어졌거나 상태가 불량하고, 매장 주변 화재경보기 경종과 피난 유도등 등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등 총 24건을 지적 받았다는 사실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자.

2020년에 개장된 건물에 설치된 3년도 안된 화재감지기 전선이 왜 끊어져 있으며, 역시 3년도 안된 화재경보기 경종과 피난유도등에 문제가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아울렛 건설 시 설치된 소방기기들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아마도 소방법 상의 기준은 맞췄지만 가장 비용이 저렴한 기기들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높다. 최저단가 제품을 설치하는 건설업체들의 오랜 관행을 끊기 위해 ‘소방공사 분리발주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어찌됐든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 인증을 받은 제품들의 현실이 저렇다면 현재 한국 건설시장에 설치되고 있는 대부분 소방기기들의 품질 문제라고 봐야 한다.

​◆ 우리는 화재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 아파트나 사무실에 설치돼 있는 동그란 화재감지기가 정상작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3년도 안돼 전선이 끊어질 수도 있는 화재 감지기가 내가 있는 건물에도 설치돼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화재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5일 소방청 대상 국정감사에서 임호선 국회의원은 “화재경보기 오작동률 99.8%”라고 주장했다. 이는 2020년 소방차 출동건수 3만2000건 중 99.8%가 화재경보음 오작동, 즉 비화재보였다는 통계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비화재보가 이렇게 많다 보니 화재경보가 울여도 ‘오작동’으로 판단하고 신고 또는 대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건이 작년 6월의 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다. 

화재 경보음을 오작동으로 판단한 작업관리자들이 경보음을 중지시키고 또 울리는 경보음까지 6차례나 중지시키는 행동을 반복했고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

화재경보기들의 오작동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소방청 품질 기준에 맞는 화재경보기들이지만, 제품 자체의 기계적 결함이나 오류가 있거나, 법적 품질기준 자체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비화재보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방 설비의 품질기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소방 관련 법 기준은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를 계기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의 소방시설 관련 기준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고층화, 도시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관련 기준도 높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제 역할을 못하는 소방설비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 그런 소방 설비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제품들이 설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정부의 결단과 소방당국의 과감한 개혁적 추진이 필요하다 = 이제 바꿔야 한다. 소방설비 전체에 대한 기준부터 개선돼야 한다. 가장 먼저 화재감지기, 수신기, 경보기 등 화재를 감지하고 알리는 첨병 기기들부터 제품 인증 기준이 바꿔야 한다. 

기술기준과 소방 안전기준은 4차산업 시대에 맞게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수용해 IoT, ICT, 메타버스, 디지털트윈 기술이 접목된 제품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 시스템에 의한 자동 점검으로의 변화 추진 = 사람에 의한 년 1회 점검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언제든 점검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바꾸고 이상이 생기면 시스템이 즉시 알 수 있는 소방설비들로 교체해야 한다. 

소방설비로 기능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지 여부를 즉시 알 수 없는 설비들은 이제 퇴출돼야 한다.

비용이 들 것이다. 개당 몇 천 원짜리 감지기를 설치하던 건설업체들에게 개당 몇 만 원짜리 감지기를 설치하라고 하면 건설업체들부터 난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 비화재보 감축 위한 기술도입 및 화재경보체제 변경 = 오작동 없는 화재경보가 가능하려면 기술적 기준이 새로 제정돼야 한다. 단순히 열이나 연기를 감지해 울리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센서들의 통합판단에 의한 화재경보체제로 바꿔야 하며 이를 위한 시스템적 화재경보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소방설비들이 되도록 승인 기준을 바꿔야 한다.

◆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하는 기기들의 퇴출 = 골든타임인 7분 이내의 조기 진화를 위한 소방 방재 개념이 소방 법령에 녹아들어야 한다. 자동속보시설을 의무화하고 발화지점을 정확하게 알리지 못하는 일반 감지기들은 퇴출돼야 한다.

◆ 안전하지 못한 구시대의 유선 소방설비를 대체하기 위한 정부 지원 = 전선이 끊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처음부터 배제한 무선 소방설비들이 유선화재감지기들을 대체 하거나 병합 설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무선 소방설비들의 시장 확대를 어렵게 하고 있는 문제들을 소방당국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한다.

첫째, 기존의 유선 소방기기 기준으로 만들어진 법령을 무선기기들에게도 일방적으로 적용해서 지키라고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연구 용역을 주거나 공청회를 통해서 무선기기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선을 없앤 무선기기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파를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전파 출력이다. 이것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출력 상향에 대한 허가를 해주지 않고 민간 업체들에게 허가를 위한 실험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하는 등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전파출력 효율적 관리를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줘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는 화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소방청과 KFI의 자기반성과 현실 인식이 없으면 화재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가 시대에 맞는 소방법과 소방기술기준을 만들고 과감하게 개혁에 나서야 한다.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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