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가 올해로 20주기를 맞았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처지를 비관한 50대 남성이 1079호 차량에 탑승해 인화 물질을 뿌린 후 불을 붙인 방화였다. 

삽시간에 화염이 차량으로 번졌지만 초기 진화용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3분 뒤 맞은편 선로에 “화재가 났으니 조심히 들어오라”라는 종합사령실 지시를 받은 1080호 차량이 진입했다가 정전으로 멈춰서면서 불길이 옮겨붙었다. 

그렇게 지하철에 타고 있던 승객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쳐 모두 34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6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아직도 무연고 희생자로 남아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 압축성장과 외형적 양적 성장에 급급해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고 소홀히 한 결과가 빚은 대형 참사였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전동차는 화재에 취약한 소재로 이뤄져 불길은 순식간에 번졌다. 사고 대응과 수습도 우왕좌왕 허둥댔다. 지하철 운영의 난맥상도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 사회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희생자와 시민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겪은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 사회는 그 뼈아픈 희생으로부터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안전으로 이어졌는지 찬찬히 반추하면서 진지한 반성과 냉철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몇 가지 진전도 있었다. 지하철 내장재는 2005년 6월 불연재로 교체됐고, 2016년 9월 국민안전처로부터 허가받아 2·18 안전문화재단이 개소됐으며, 2019년 10월에는 대구시가 참사 부상자에 대한 의료지원 조례안을 공포했다. 

안전 관련 시스템을 고도화했으며,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동일 패턴의 대형 참사와 대응이 계속 반복돼온 점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고 곁다리만 짚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사령실 오판으로 차량이 진입하며 발생한 추가 희생자 규모가 무려 100명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때엔 당국의 구조 실패로 304명이 희생됐고,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경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선 경찰이 인파 위험 신고를 무시해 159명이나 숨졌다. 

안전 관련 시스템이 있음에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확실한 반증(反證)이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직후 사회적 관심과 여론의 질타는 정신질환 범인과 아둔한 기관사를 욕받이 삼아 사회적 공분으로 쏟아졌을 뿐 진상규명은 흐릿한 상황에서 백서 한 권 펴내지 못했다. 이후 발생한 모든 참사도 매번 마찬가지였다.

이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가 제대로 추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발생 6년 만에 조성된 추모공원은 묘역에 안내판도 없고 희생자 위령탑은 ‘안전상징 조형물’로 불리는 반쪽짜리다.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사고와 재난은 100% 차단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더욱더 없다. 중요한 점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극히 맞는 얘기지만 안전경시 풍토와 해이해진 안전의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그동안 도외시해온 기본과 원칙의 철저한 준수에 있다. 

다중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사나 선장은 물론 모든 국민이 각자가 맡은 책무를 늘 명확히 인식하고 항상 철저히 실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고가 났다면 아픔을 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과학적 인과관계를 분석해 그 과정을 복기해야 한다.

이런 노력에는 정치 논리가 개입돼서는 결단코 안 된다. 고통스럽지만 20년 전 그날의 아픔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재난 참사의 발생빈도를 최소화하면서 사고 없는 안전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동안 어느 한순간도 가슴밖에 둘 수 없는 존귀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안전’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왜냐면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사회에선 국가발전도 경제성장도 국민행복도 감히 생각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에는 고비가 있고 시간의 흐름에는 마디가 있다. 우리의 역사는 그 고비와 마디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뒤바뀐다. 특히 역사의 뒤안길에 도도히 흐르는 교훈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또 다를 아픈 역사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준엄한 명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통찰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한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는 진전하는데 실수가 반복되지는 않은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똑같은 실수를 도돌이표로 반복하는 데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지워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잊을 때 특히 정치적 이해로 감출 때, 참사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되풀이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은 “우리가 제대로 했더라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안해한다. 

고통받은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죄책감까지 느끼게 하는 사회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따지고 보면 작년 12월 29일 오후 1시 49분경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상행선 북의왕 나들목(IC) 인근 방음터널의 가연성 자재 발화로 49명이 사상한 화재 참사도, 결국 우리 사회가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에 치른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할 일은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 후대에 기억하게 할 백서를 만들고, 이를 거울삼아 또 다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사회적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는 잘못을 기억하고 똑같은 실수로 인한 재발을 방지하자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근세 독일의 과거는 실패한 과거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치 독일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이 살던 곳이나 그들이 끌려가기 전 마지막 장소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이라는 황색 동판이 있다. 

독일어로 ‘걸려서 비틀거린다’라는 ‘슈톨페른(Stolpern)’이라는 단어와 ‘돌’이라는 ‘슈타인(Stein)’의 합성어로 ‘걸려서 넘어지게 하는 돌’이라는 의미다. 가로, 세로 10㎝ 정도인 이 명패에는 “몇 년에 태어난 누가 여기 살다가 언제 추방돼 어디서 죽음을 맞이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 명패를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유대인이나 장애인이 거주하던 집 근처에 박아 놓았다. 끔찍했던 기억을 되새기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참사도 어서 빨리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독일은 이 수치스럽고 끔찍한 기억을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하라며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거리에 버젓이 박아 뒀다.

 2019년 말 기준 7만5000명의 이름이 전 세계 각 지역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고통 앞에서 시간은 결단코 약이 될 수 없다. “잊으라”라는 말은 어떠한 경우라도 위로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키울 뿐이다. 

마음의 고통은 몸과 달리 소멸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말이 없다고 가슴까지 침묵하는 것은 아니고 눈물이 없다고 영혼까지 메마른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소통이 무엇인가? 상대가 바라고 원하고 간구하는 것을 나의 가슴으로 가져와 나의 사랑과 열정으로 태우고 녹여 마침내 상대를 감동케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상처받은 사람을 품고 보듬어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보다 더 큰 가슴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완전한 진실로 온전한 치유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아 가야 할 때다.

2023년 2월19일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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