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9일 같은 제목의 필자 칼럼에서, 3월6일의 수원 화서동 아파트화재와 4월6일의 서울 방이동 오피스텔화재를 언급하면서, 우리의 가장 궁금한 부분인 ‘왜 계단실이 연기 굴뚝으로 됐는지?’에 대해 화재조사에서 찾아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걸어보았었다.

그래서 필자는 화재조사 내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알아봤다.

수원 화서동 아파트 화재는 제연설비가 없는 15층 건물이었는데 계단실에서 연기 질식사 1명과 8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계단실이 연기 굴뚝으로 됐던 이유가 ‘화재거실출입문이 말발굽으로 개방 고정됐기 때문’이라는 기사링크 글에 달린 댓글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할 소방서 담당자와 통화에서 화재거실에서 사망자로 확인된 한 분의 후속 탈출·구조 때문에 화재거실의 출입문이 한참 개방됐던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러나 화재보고서 공개는 이해 관계자인(아파트관리소장 등)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거절됐다.

서울 방이동 오피스텔 화재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화재 거실출입문의 개방고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는 화재보고서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내용에서 주요 시나리오를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기 약 4시간 전인 오전 5시 경 거주자는 외출했고 화재는 오전 9시20분에 발생해 스프링클러는 1분 뒤 오전 9시21분에 작동됐다.

오피스텔 관리인은 화재경보를 접하고 경보 발신 거실 604호로 올라가 거주자의 외출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파악한 후 출입문을 열게 됐다. 그때 관리인은 집 안은 연기가 가득 차 있으나 불꽃이 없어 화재는 스프링클러에 의해 진화된 것으로 보았고, 많은 물이 부속실로 유출돼 수손피해를 우려해 알람발브를 폐쇄해 스프링클러 급수를 차단했다. 이때가 스프링클러 작동 약 9분 뒤인 오전 9시30분이었다. 이때 부속실제연설비는 가동되고 있었다.

이로부터 약 8분 뒤 오전 9시38분에 청소직원이 화재층 부속실을 방문했는데 연기가 가득함을 확인하고 대피했다.

이상의 정리 내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급수를 차단한 후 화재 거실에서는 곧 화재가 다시 발생했고 이때 화재 거실출입문은 개방해 뒀다는 사실이다.

다시 약 8분, 스프링클러 급수차단 약 16분 뒤 1층 로비에서는 승강로를 통해 다량의 연기가 분출돼 소화활동을 방해했다. 화재보고서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기타 특이사항 - 화재발생 당시 6층에서 발생한 연기가 E/V실 등을 통해 1층 출입구로 다량 분출되면서 소방대 진입 및 수관 연장 등 소방활동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음”

화재보고서는 위 특이사항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유추한다.

1. 화재 거실출입문이 부속실로 개방 및 스프링클러 급수 중지 후 화재는 다시 살아났다. 부속실 제연을 위한 신선한 외부공기 공급은 재발화와 화재 성장의 산소공급원이 된 것이다.

2. 성장한 화재는 화재거실의 기압을 상승시켰고 그 열연기는 개방출입문으로 부속실의 기압을 상승시켰고 그 높은 기압의 연기는 승강로로 밀고 들어갔다. 결국 승강로의 가압된 연기는 각층 부속실과 1층 로비로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3. 그러나 전 층의 부속실에는 부속실 제연급기에 의해 높은 기압이 형성됐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로는 가지 못하고 외부로 개방돼 기압이 없는 1층 로비로 밀고 나오게 된 것이다.

위 두 화재 사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계단실로의 피난은 신중해야 한다. 화재거실의 피난자는 후속 피난자의 연속 탈출을 위해 출입문을 개방 고정해버릴 가능성이 크게 있고, 외부인인 관리인이나 소방대에 의해 개방 고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의 거실출입문에는 말발굽 고정구가 부착돼 있어 용이하게 개방고정 될 수 있어 아주 쉽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때는 화재거실의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힐 수가 없는 것이 되므로 화재거실의 연기는 계단실로 크게 방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계단실은 절대 안전한 피난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용광 한국안전기술 전무(소방기술사)
김용광 한국안전기술 전무(소방기술사)

둘째, 부속실제연을 하는 곳에서도 피난자 또는 관리인 등 외부인에 의해 화재거실의 출입문은 개방 고정될 수 있고, 이때 화재의 재발화 또는 진화실패상태라면 부속실급기는 화재를 도와서 화세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 거꾸로 말해 피난이 완료된 상태에서는 제연급기는 화재를 키우기 때문에 중단될 필요가 있다.

화제를 바꿔 이전 칼럼에서 이야기하던 부속실제연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새로운 제연방법인 계단실제연을 ‘범어자이’에 도입하려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이전 칼럼에서는 부속실제연은 옥외피난과 소방대진입과 굴뚝현상을 고려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어, 이러한 문제점이 없는 계단실제연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오늘은 화재거실의 출입문이 피난자 등에 의해 개방 고정될 수도 있어서 이때의 부속실 제연급기는 화재를 키운다고 하는, 부속실제연의 문제점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제기했던 ‘범어자이’의 부속실제연을 계단실제연으로 설계변경하려던 것은 몇 가지 이유로 좌절됐다.

가장 주된 이유는 성능위주설계재심의이다. 이미 성능위주설계심의를 통과해 건축 허가된 상태인데, 설계변경해 재심의를 시도한다는 것은 건축주 등에게는 비용과 공기지연 우려 등 부담이 되는 등 귀찮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리자는 기술상 불합리에 대해 검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지만, 건축주 등은 그 검토 결과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 현행의 법이다. 거금을 투자하는 건축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축허가와 조기 준공이므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감안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본건의 설계변경 의견에 대해 가장 크게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성능위주설계 재심의이었다. 역설적으로 이 제도가 안전한 ‘범어자이’의 실현에 방해물이 된 셈이다.

사실 필자가 지적하는 사항은 성능위주설계 가이드라인에서 “피난층출입문개방과 내외 기온차에 따른 영향을 시뮬레이션해 설계에 반영하라”고 권유하고 있는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성능위주설계심의에서 짚어보지 않고 건너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 가이드라인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님)

그런데 이것을 감리원이 발견해 바로잡아보려고 했으나 이를 빠뜨린 성능위주설계심의위원회에 재심의를 받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 과정에서 시간을 끌다가 종국에 거절될 수도 있고, 큰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고, 심의에 시간이 걸려 공기가 지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것이 걸림돌이 돼 설계변경이 허용될 수 없었다. 그리해 불합리한 설계대로 시공돼야 하는 것이 ‘범어자이’의 운명이 된 것이다.

사실 이 성능위주설계제도가 없었다면 필자의 의견이 수용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약 필자의 개선의견을 수용한다면 제연설비의 공사비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성능은 배가되는 효과가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성능위주설계에 대해 당 현장의 예로 한마디 의견을 보탠다면, 심의 결정 내용에 본건을 위시해 빠뜨린 것이라고 보이는 것이 있고, 과잉 설계했다고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만큼 기술적 설계는 다시 생각하면 결점이 발견되고 더 좋은 방법이 있는 유동적 성질이 있어 절대적으로 완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성능위주설계 심의 결과는 너무 큰 권위가 부여돼, 즉 융통성이 없어져 버려 시공 현장에서 감리원 등의 의견을 반영하는 개선이 어렵게 돼버리는 것이다. 이는 이 제도의 도입 취지에 벗어나는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능위주설계라는 용어는 상당히 난해해 이를 접하고 언 듯 머리에 와 닿는 것이 없는 용어이다. 잘 지어진 용어가 아닌 것이다.

이 용어는 영어로 Performance Based Design인데, 그 뜻은 ‘당해 건축물이 실제로 요구되는 안전 성능이 어떤지를 파악해 거기에 맞게 설계한다’는 의미이다.

화재안전기준이 평균적 안전기준이라면 성능위주설계에서는 안전성능이 더 필요하면 더 높은 안전기준으로, 안전성능이 덜 필요한 경우에는 더 낮은 안전기준으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요약해 ‘필요 안전성능 맞춤 설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필요성능설계’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우리 성능위주설계심의 결과는 보다 낮은 기준을 택한 것은 볼 수 없고, 불필요하게 높은 기준을 적용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결정 과정이 위원들의 개인적 의견에 대해 토론을 통해서 취사선택하거나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심의 결정의 내용들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가 없고 뒤에 손볼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놓친 부분이나 과잉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공 현장에서 합리적 개선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열어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심의 결과가 의무적 반영 사항이 아닌 권유하는 사항으로 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설계사에 대해서도 감리원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준공 후의 소방시설의 성능 책임은 설계회사나 성능위주설계심의위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리업자에 더 있기 때문이다.

지금 건설업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4월29일 인천 검단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건에서 구조물의 설계감리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그 교훈이 같은 건축물에 있는 소방시설의 정상화를 위해 소방공사 감리업자에게 설계감리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결론적으로 ‘범어자이’는 발견한 기술상의 불합리를 개선하는 데에 실패해 불합리한 설계대로 시공될 것이고 나아가 성능시험은 억지 합격할 것이다. 수많은 이미 시공 준공된 다른 건축물처럼….

필자의 괴로운 심경을 이 넋두리 글로 달래본다.

범어자이, 소방 제연설비 갖춰질 수 있을까?

김용광 한국안전기술 전무(소방기술사)

기자명 윤성규 기자  입력 2023.04.19 09:02 수정 2023.06.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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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18일

김용광 한국안전기술 전무(소방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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