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로 철학을 한다고? 지난 3월 초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의 정봉주 전의원 지역구 공천 여부를 놓고 한창 이야기가 오갈 때였다. 트위터에 ‘나꼼수로 철학을 한다는 책’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출간을 알리는 출판사의 트위터 멘션 한 줄이 시작이었다.

▲ 김성환 교수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멘션이 올라왔다. 나꼼수의 인기에 편승하려 한다는 이야기 정도는 예사였고 ‘감히 나꼼수 따위’에 철학의 이름을 들먹인다는 반응도 있었다. 조롱이 이어졌다. 나꼼수로 철학을 하면 나꼼수로 교육학도, 나꼼수로 피아노도 치겠다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미처 책이 서점에 진열되기도 전이었다.

‘니체부터 들뢰즈까지 나꼼수를 위한 철학적 알리바이’라는 부제가 붙은 문제의 책 ‘나꼼수로 철학하기’의 저자는 생소했다.

지금까지 특별한 외부 활동 없이 연구와 학술서적 집필 활동만 해온 철학자였다. 학교 이외의 곳에서 강연을 하거나 신문, 잡지 등에 주목할 만한 글을 연재하지도 않았다. 몇 편의 주목할 만한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을 뿐이다.

그가 지난 2008년에 출간한 ‘17세기 자연 철학’은 그해 교육과학기술부 대표우수연구성과에 선정되고 한국출판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책에 새로운 자연철학을 세우려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런 그가 갑자기 왜 나꼼수를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는 책을 낸 것일까?

◆나꼼수, 정치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식 되살려 = 그는 서문에서 “나꼼수는 21세기 최고의 철학 텍스트”라고 선언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책을 보면 나꼼수 첫 회가 나온 지 두 달 만에 처음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시끄럽고 시간도 아까워서 30분 만에 꺼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다시 나꼼수를 듣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이런저런 구설에 오를 위험을 무릅쓰고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

“나꼼수 팬이어서 나꼼수를 편들고 싶었어요. 처음에 금방 꺼버린 이유는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죠. 너털웃음, 잡다한 이야기, 자기 자랑… 진지한 이야기에 익숙한 저의 귀에 나꼼수가 권력을 비판하는 이유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아내가 다시 권했어요.

오세훈 시장 이야기 재미있다고. 다시 들어보니까 나꼼수가 오세훈 시장과 재미있는 정치 게임을 벌였더군요. 또 나꼼수가 이겼어요. 맘에 들었어요. 다시 1회부터 다 들었죠.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느낀 정치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식이 되살아났죠.

나꼼수를 돕고 싶었어요. 제가 철학을 공부하니까 나꼼수를 철학으로 정당화해 주고 싶었죠. 또 책을 쓰면 돈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출판사와 계약서 쓰면서 인세의 반은 나꼼수나 관련 단체 또 개인에게 기부하기로 명시했죠. 출판사 대표가 이런 계약서 처음 써 본다고 말씀하셨어요.”

나꼼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남자 몇이 나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음원파일이 팟캐스트 세계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정치 지형도를 변화시켰다고.

실제로 나꼼수를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1000만 명이 넘고 여론조사 결과 주류 언론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신뢰를 얻고 있다. 저자는 이런 나꼼수 현상을 일시적인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 책에서는 ‘격동’이라고 표현했다. 방송 자체야 당장 잊혀질 수 있어도 나꼼수가 뿌리 내린 씨앗이 향후 한국 사회 진보의 초석을 깔아놓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정치·경제·언론·종교 등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에게 최대의 적은 누굴까요? 바로 나꼼수죠. 21세기 들어 기득권 세력에게 나꼼수만 한 공공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나꼼수 멤버들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이면 간첩단 사건으로 엮여서 최단 기간에 사형을 당했을 만한 인물들이에요.

프랑스 대혁명은 헤겔에게 이성에 대한 믿음을 주었죠. 신앙과 신분을 대신해 이성이 세상을 진보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 프랑스 대혁명 덕분에 생겼죠. 헤겔만이 아니라 많은 시민과 사상가 들에게도요.

나꼼수는 1년만 지나도 많은 사람이 잊을 거예요. 세상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니까요. 그러나 3·1운동, 4·16혁명, 5·18 광주 민주화 항쟁같이 오래 기억되는 일도 있잖아요. 나꼼수가 이런 운동, 혁명, 항쟁에 비해 급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명박 정권을 교체하고, 재벌을 개혁하고, 조중동을 무너뜨리고, 종교 단체가 세금 내게 만드는 것이 21세기에 이뤄야 할 진보라고 생각해요. 나꼼수는 10년, 20년 뒤에 보더라도 이런 진보의 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철학은 세계관을 알려주는 유용한 도구. 나꼼수 멤버들과 철학 인터뷰 하고파 = 철학자가 이렇게 편을 들어도 될까? 철학자는 항상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철학자들은 여러 사회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시작부터 ‘나꼼수 편’을 들겠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허나 동시에 쉬운 철학에 대한 이야기도 강조했다. 결국 철학 자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꼼수를 활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철학을 위해서도 책을 썼죠. 제 전공이 철학이고 철학을 대중화하는 건 항상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20세기 대중문화의 화려한 꽃인 영화와 대중음악으로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도 썼어요.

별로 큰 반응은 없었지만요. 21세기 문화는 아직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이버 문화가 유력한 대표 문화죠. 사이버 문화는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뉴미디어와 관련된 문화니까 나꼼수도 사이버 문화의 일부로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꼼수로 철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이버 문화로 철학 이야기를 하는 거죠. 철학은 항상 새 문화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반영하는 일을 해야 해요. 제가 책 쓴 것도 이 일의 아주 작은 일부에요.”

대학의 철학과는 요즘 신입생이 없어 고민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인문학이 위기에 몰렸고 그중에서도 가장 위태로운 곳이 철학이다. 외국에서는 종종 마케팅 및 투자관련 회사에서 철학 전공자를 선발하기도 하는 뉴스가 들리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철학과는 배고픈 전공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철학자 혹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세상과 동떨어진 채 알듯 모를 듯한 사변만 늘어놓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을까?

“철학도 자연과학과 공학처럼 실험과 실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학생들에게 콘서트, 스포츠 경기장, 미술관, 성형외과 같은 문화의 현장에 나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인터뷰하고 발표하고 토론하게 해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 욕망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인데 현장에 가서 실험, 실습하라는 거죠. 김어준이 ‘건투를 빈다’라는 책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것이 부러워요. 인생 상담은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거든요.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철학관은 점치는 거지만 현대식 철학관은 김어준과 같은 인생 상담을 해야 해요. 철학 과목 중에 철학 상담도 있어요. 김어준은 사람들이 누구나 자기 욕망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철학은 사람들이 자기 욕망뿐 아니라 자기의 사고방식, 가치관, 세계관도 알게 도와줄 수 있어요.”

나꼼수에 대해 책을 쓰긴 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나꼼수 멤버들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다. 책을 출간한 이후에도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물론 전혀 서운하지는 않다. 언젠가 그들이 한가해지면(그럴 날이 오겠냐는 전제를 깔긴 했다) 그들과 철학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스스럼 없이 자신이 나꼼수 ‘팬’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탁한다. 약속한 날까지 잘 버티라고.

“보고 싶어요. 팬이니까. 콘서트에 가볼 거예요. 나중에 좀 한가해지면 인터뷰도 하고 싶어요. 나꼼수의 의미를 짚어보고 나꼼수의 철학도 제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나꼼수가 막을 내리겠다고 약속한 2013년 2월25일까지 잘 버티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비키니 시위 사건처럼 조중동이 물어뜯을 사건이나 정봉주처럼 나꼼수 멤버를 구속할 사건이 일어날 거예요. 나꼼수 멤버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요. 고비를 지혜롭게 극복하길 빌어요.”

◆ 지은이 김성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8년 ‘17세기 자연 철학’을 출간해 교육과학기술부 대표우수연구성과와 한국출판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대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새 자연철학을 세우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 세 권의 책을 꼭 내고 싶어 한다.

첫 책, ‘17세기 자연 철학’은 이미 썼다. 지금은 둘째 책인 동물의 마음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셋째 책은 사람의 의식에 관한 책이다. 이 세 가지 작업을 통해 새 자연 변증법의 벽돌을 몇 장 쌓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한다.

영화와 대중음악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에 주목해 ‘나는 본다, 철학을’(1998), ‘대중 음악 속의 철학’(2001), ‘영화로 생각하기’(2010) 같은 책을 썼다.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저작권자 © 세이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