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는 왜 빨간색이에요?”

소방관들이라면 학교나 유치원에 소방안전교육을 나갔다가, 또는 소방서를 찾아온 방문 어린이들로부터 한 번쯤은 받아봤을 질문일 것이다. 어쩌면 당연시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이 던지는 예상 밖의 질문은 종종 소방관을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소방차가 빨간색인 이유로 가장 보편화된 것은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처럼 빨간색이 다른 색에 비해 시각적으로 빠르게 인지되는 과학적인 이유와 빨간색을 주의경계의 대상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심리적인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방관의 대답에 이어지는 아이들의 다음 질문은 첫 질문을 받을 때보다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러면, 왜 경찰차나 구급차는 빨간색이 아니죠?”

사진 1 – 1896년 화재출동하는 프랑스 소방마차들 (출처 : meisterdrucke)
사진 1 – 1896년 화재출동하는 프랑스 소방마차들 (출처 : meisterdrucke)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빨간색 소방차의 장점은 지금도 소방차가 빨간색으로 유지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나 왜 옛날에 소방차를 빨간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외국의 소방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소방차들을 보면 나라마다 혹은 소방대마다 어느 시기부터 빨간색 소방차가 등장하지만 왜 빨간색을 칠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를 찾아보긴 어렵다. 

소방차에 빨간색을 처음 칠했던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빨간색이 가진 과학적, 심리적 장점을 알고 있었기에 빨간색을 칠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소방차가 왜 빨간색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현재진행형의 답을 찾으려는 것보다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왜 빨간색이었었는가에 대한 과거완료형 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진 2 – 1925년 제작 포드 소방차(출처 : historic auctioneers)
사진 2 – 1925년 제작 포드 소방차(출처 : historic auctioneers)

◆ 미국 포드 자동차와 페인트 가격 = 소방차가 빨간색이 된 역사적인 배경을 미국 포드 자동차의 대량생산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1920년대 미국의 포드자동차에서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폭증했고 검은색의 페인트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포드에서는 자동차를 모두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소방대는 이러한 일반 자동차들과 구분하기 위해 소방차에 다른 색깔을 칠할 필요가 있었는데, 당시 소방의 주력이었던 의용소방대들은 재정적 여유가 없던 상황이라 검은색과 잘 구분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빨간색 페인트를 선호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나라로 확산됐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당시 기록은 부족해 보인다. 

사진 3 – 1905년 대형화재 현장 파리소방관들(출처 : 르페티쥬르날)
사진 3 – 1905년 대형화재 현장 파리소방관들(출처 : 르페티쥬르날)

◆ 기록에 등장한 프랑스 소방차 색깔 = 이렇게 현재 많이 언급되는 미국 유래설과는 대조적으로, 수십 년 앞선 빨간 소방차의 명시적인 기록을 가진 사례가 있다. 

바로 프랑스 파리소방이다. 파리소방은 군조직이었기 때문에 소방차의 색깔도 녹색과 검은색이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성능이 좋다고 소문난 말이 끄는 증기펌프 소방차를 도입했는데 당시 이 소방차가 빨간색이었다.

파리소방에서 이 소방차들을 운용해 보니 자신들이 사용해 오던 기존의 색깔보다 눈에 잘 띄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1885년 아예 관련 지침을 만든 뒤 나머지 모든 소방차를 빨간색으로 다시 칠했다고 한다. 

소방차 색상을 변경했던 명시적인 기록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파리소방이 통일성을 중요시하는 군조직이라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파리소방보다 더 앞선 기록이 있다. 프랑스 리용소방에서는 1867년 영국의 같은 회사의 빨간색 소방차를 먼저 수입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이 파리와 다른 지역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진 4 – 리용박물관에 전시된 영국제 증기펌프차
사진 4 – 리용박물관에 전시된 영국제 증기펌프차

◆ 영국의 메리웨더앤손즈 자동차 회사 = 이렇게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빨간색의 증기펌프 소방차를 수출했던 회사는 영국의 메리웨더앤손즈였다. 성능이 우수했던 이 빨간색의 증기 소방차는 프랑스 이외에도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여러 나라에 수출됐는데, 아마도 이것이 세계적으로 소방차의 색깔이 빨간색이 되는 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메리웨더앤손즈는 왜 생산하는 소방차의 색깔을 빨간색으로 했을까? 이에 관해서도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려 했을 것이라는 설, 영국 윈저성 왕실소방대에 소방차를 남품하다 보니 왕실전통의 빨간색을 썼을 것이라는 설, 빨간색이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어 선택했을 것이라는 설, 빨간색 페인트가 저렴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관련 기록이 없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사진 5 – 1895년산 메리웨더 증기펌프차(출처 : 파워하우스컬렉션)
사진 5 – 1895년산 메리웨더 증기펌프차(출처 : 파워하우스컬렉션)

◆ 내연기관 소방자동차 = 최초의 빨간색 소방차를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영국의 메리웨더앤손즈 기업 빨간색 증기펌프 소방차가 기록된 19세기 후반까지 되돌아가 보았다. 

정리하자면 영국에서 19세기 후반 메리웨더앤손즈 기업에서 성능 좋은 빨간색 증기펌프차를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했고 사용자들에게 빨간색이 가진 상대적 장점이 부각되면서 소방대에서 소방차는 빨간색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6 – 1910년 영국 윈저성 왕실소방대(출처 : 뮤지엄오브파이어)
사진 6 – 1910년 영국 윈저성 왕실소방대(출처 : 뮤지엄오브파이어)

혹자들은 어쩌면 말이 끌었기 때문에 증기펌프차 시대를 기준하지 말고 독자적인 주행이 가능했던 내연기관 동력 소방자동차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포드 소방차가 빠르지 않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12년 브라질에 수출된 빨간색 내연기관 소방차가 말해주듯이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대량생산시스템을 처음 가동한 1914년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메리웨더의 빨간 소방자동차가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사진 7 –1912년 브라질에 수출된 메리웨더 내연기관소방차(출처 : 위키피디아)
사진 7 –1912년 브라질에 수출된 메리웨더 내연기관소방차(출처 : 위키피디아)

◆ 완용펌프도 빨간색이었을까? = 그러면 메리웨더앤손즈 기업에서 빨간색을 사용하기 시작한 증기소방차 시대 이전의 소방차량은 빨간색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메리웨더앤손즈 사의 빨간색 사용이 독창적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의 사례를 따른 것인지를 판단해 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진 8 - 1840년에 제작된 완용펌프차(출처 : cars bonhams)
사진 8 - 1840년에 제작된 완용펌프차(출처 : cars bonhams)

종종 해외의 중고시장이나 박물관에서 더 오래된 소방차량에 빨간색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념우표, 담배카드, 우편카드 등에 아주 오래전 제작된 빨간색 완용펌프가 등장하곤 한다. 

증기펌프차 등장 이전에도 바퀴달린 빨간색의 완용펌프차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실물과 이미지들이지만 확신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파리소방의 사례처럼 당초 다른 색이었다가 시간이 지나 이후에 빨간색을 칠해졌을 가능성이 있고 기록적으로 뒷받침이 부족해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 9 – 1824년 제작 영국 에딘버러 소방차(출처 : 위키피디아)
사진 9 – 1824년 제작 영국 에딘버러 소방차(출처 : 위키피디아)

◆ 필자의 결론 = 빨간 소방차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메리웨더앤손즈 사에서 빨간색의 증기펌프차를 생산해 프랑스에 수출한 것이 기록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초이고, 해외 여러 나라에 수출돼 이를 사용한 현지 소방대에서 빨간색에 대한 상대적 장점을 인식해 빨간색을 소방차의 색으로 정착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 10 – 1930년대 담배카드에 등장한 18세기 소방차(출처 : 이베이)
사진 10 – 1930년대 담배카드에 등장한 18세기 소방차(출처 : 이베이)

또 증기펌프차 이전의 빨간색 사용 사례에 대해서는 빨간색의 완용펌프 소방차의 실물은 존재하고 있으나 그 채색시기를 특정할 수 없어 판단에 한계가 있어 아쉽다.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그런데 이런 사례도 있었다. 독일에서는 1750년 시골지역의 부족한 소방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형화재 발생 시 이웃마을에 말을 타고 가서 소방력 지원을 요청하는 소방기사제도 운영을 시작했다. 

이들의 임무를 쉽게 인식하도록 나팔을 불고 말안장과 기수의 모자를 빨간색인 것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것이 이후 소방차의 색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사례처럼 빨간색은 세계 곳곳에서 오래전부터 소방대의 색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관련해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23일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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